썸원레터

💭 가장 평범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최후의 승자가 된 이유

damdam5823 2025. 5. 9. 12:53

1. 전국시대 최후의 승자가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어렸을 때부터 남달리 뛰어났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을 보면, 이런 이야기들은 나중에 생겨난 것으로 결과론에서 나왔을 뿐이다.

2. (역사의 승리자임에도 불구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평범했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사례는 꽤 존재한다. 물론 평범하다는 말이 어리석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3.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다 노부나가’와 손잡았던 시절에는 성실하고 견실한 무장이라는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수하 장졸도 강했다. 하지만 오다 노부나가 가문의 중신들에 비하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담당하는 작전 범위와 동원 병력은 작았다. 실질적으로 보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중신들보다 낮게 취급받았다.

4. 그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천하를 노릴 수 있는 다이묘가 된 것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지나칠 정도로 그를 우대했기 때문이다. 도요토미 히데오시는 '모리 데루모토'와 '우에스기 가게카쓰'와 세력이 비슷하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260만 석의 영지를 하사해 단번에 2배에 가까운 거대 다이묘로 만들어줬다.

5.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마음을 사로잡아 성실한 동맹자로 자신의 휘하에 두려고 한 것인데, 결국엔 제 꾀에 제가 넘어간 꼴이라고도 할 수 있다.

6. 게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따르던 명장들이 잇달아 죽은 것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존재감을 키웠다.

7.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뒤 유력한 경쟁자가 없는 가운데 260만 석의 영지를 소유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독보적인 실력자가 되었다.

8. 천재도, 카리스마적인 존재도 아닌 보통사람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꾸준히 노력하고 학습하고, ‘마카타가하라 패전’과 같은 실패에서 배우고, 오다 누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성공 사례와 실패 사례를 거름 삼아 성장했다.

9. 이런 과정 끝에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위업을 달성했으니 이것이야말로 칭송할 만한 일이다.

10. (특히)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나 오다 노부나가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화가 남아 있다. 강대한 '다케다 신겐'에게 무모하게 도전했다가 패배라는 쓴 잔을 마신 ‘마카타가하라 전투’ 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초췌하고 망연자실한 자신의 모습을 화가에게 그리라고 했다.

11. ‘우거지상’이라고도 불리는 이 초상화는 지금도 전해진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틈나는 대로 이 그림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교만함을 경계하지 않았을까?

12.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자신을 절대시 하는 일이 없었다. 자신을 천재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을뿐더러, 독선적으로 일을 진행하는 경우도 없었다. 항상 부하의 의견을 경청하고 회의를 중시했다.

13. 게다가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보여준 불필요한 잔혹성도 지니지 않았다. 정치가로서의 평범한 그의 기질은 (오히려) 큰 이점을 동반했다.

14. 이러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성격은 천하를 얻은 뒤에도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천재도, 카리스마적인 존재도 아닌 그는 자신의 한계를 숙지했기에, 권력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 그렇게 마침내 항구적인 패권을 안았다.

- 썸원레터 (2022-03-26) [원문](다부치 나오야, <확률적 사고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