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원레터

💭 공감은 깊게 하는 게 아니라, 넓게 해야 하는 거예요!

damdam5823 2025. 7. 28. 16:35

1. 인류는 지금 양극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 디지털 양극화는 극에 달해 인터넷은 이미 내전 중이다. 동지가 아니면 적이다. 그냥 적이 아니라, 충(벌레)이다. 맘충, 한남충, 심지어 급식충까지…

2. 상대를 인간 이하로 취급하면서 자신의 혐오를 정당화하려 하는 것이다. 객관적 평가는 개나 줘버린 지 오래다. 편을 들지 않은 말과 글은 ‘좋아요’는 고사하고 악플조차 받기 힘들다.

3. 그러니 정치인들은 통합을 꿈꾸는 게 아니라 분열을 받아먹으며 연명한다. 어차피 국민 통합 같은 가치는 불가능하니, 우리 편에게만 예쁨 받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그 흔했던 ‘대국민 사과’는 사라진 지 오래고, 자기 진영에 대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른바 ‘해명 회견’만 성행하는 행태도 같은 이유다.

4. 그런데 문제는 이런 분열이 정치 영역뿐만 아니라 세대, 남녀, 계층, 인종, 빈부, 교육을 비롯한 일상의 모든 단면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난다는 점에 있다.

5. (나는) 이 갈등의 지점에서 질문한다. 현대 사회에 만연해 있으며 최근에 더 극단적으로 치닫고 있는 이런 사회적 갈등들은 심리적 측면에서 왜 발생하는 것일까? 이런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심리적 전략은 과연 존재하는가?

6. 누군가는 말한다. 오늘날 가속화하는 혐오와 분열은 '타인에 대한 공감이 부족해서'라고.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7. 공감은 만능열쇠가 아니다. (공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공감을 (너무) 깊이 하면 위기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 우리의 편 가르기는 내집단에 대한 ‘과잉 공감’에서 온다.

8. 대체 무슨 말이냐고? 공감은 일종의 인지 및 감정을 소비하는 자원이므로, 무한정 끌어다 쓸 수 없다. 따라서 자기가 속한 집단에 공감을 과하게 쓰면 다른 집단에 쓸 공감이 부족해진다. 자기 집단에만 깊이 공감하는 것, 대한민국의 최근 상황이 딱 이렇다.

9. 그러나 인류의 진화사 전체를 펼쳐놓으면 우리의 공감력은 새롭게 보인다. 인류는 공감이 미치는 범위를 점진적으로 확장해왔다. 인류는 자원을 둘러싸고 전쟁을 벌이며 타자에 대한 증오를 증폭시키기도 했지만, 이성적 판단으로 공감의 범위를 넓히면서 외집단과의 공존과 평화를 구축해왔다.

10. (인류의 진화사를 살펴보면) 공감의 범위는 확장 가능하며, 이때의 공감은 단지 타인의 감정을 내 것처럼 느끼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타인도 나와 같은 사람임을 인지하는 것이다.

11. 과학 기술이 문명의 물질적 조건이라면, 공감력은 가히 문명의 정신적 조건이라고 할만하다. 타자/외집단까지 포용하는 공감력이 없다면 집단적 성취인 문명은 축적될 수 없기 때문이다.

12. 이런 맥락에서 다른 영장류들이 갖지 못한, 이런 탁월한 공감력은 호모 사피엔스의 핵심 징표 중 하나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감 그 자체가 아니다. ‘어떤’ 공감을 ‘어디까지’ 적용하느냐다.

13. 즉, 호모 사피엔스의 특별한 공감력이란, 공감할 수 있는 대상을 점점 넓힐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내집단 편향을 만드는 깊고 감정적인 공감을 공감의 ‘구심력’으로, 외집단을 고려하는 넓고 이성적인 공감을 공감의 ‘원심력’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14. (공감이라는 자원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공감의 구심력과 원심력은 서로 투쟁하고 있으며, 어느 쪽이 강화되느냐에 따라 우리 문명의 흥망성쇠도 영향을 받는다. 나는 현재 인류가 맞닥뜨린 문명의 위기를 해결하는 정신적 토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감이 미치는 반경을 넓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15. 우리에게 필요한 건 (공감의) ‘깊이’가 아니라 ‘넓이’다.

- 썸원레터 (2022-11-05) [원문](장대익, <공감의 반경>)